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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lliant 30: 작가 정치영 인터뷰

각각의 시대적 영웅들을 회화적 포토리얼리즘으로 표현하는 작가

<정치영, 포토리얼리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정치영은 사진을 모티브로 하는 포토리얼리즘 작가입니다. 기존의 포토리얼리즘 작품은 '터럭 한올’까지도 묘사하여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회화의 경향을 보이는 반면, 그의 회화는 사진이 온전히 나타내지 못한 암부의 *계조(gradation)를 작가의 섬세한 손을 통해 재현하여 ‘회화적인 포토리얼리즘’을 보여줍니다.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수집하여 회화로 풀어낸 그의 작품들은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회화만의 영역에 주목합니다. 닮기의 제왕인 카메라 렌즈가 복제할 수 없는 물감의 속성을 핑크와 옥색이라는 중간색조의 통일된 색채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회화 안에서 그것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계조(gradation)를 통해 그만의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합니다. <Gaze>, <Salad Days>등의 핑크 시리즈는 미디어가 생산한 ‘시대의 영웅-아폴로 우주선, 록(Rock) 음악’에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대중은 이들을 통해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었으나 시대의 변화 속에서 희망은 표류하고 그 시대의 영웅들은 구시대의 흔적으로만 남았습니다.

작가는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를 사실주의적 드러내기가 아닌 그림 속 이미지 이면의 내용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어슴푸레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전통적 미술 감상법인 한 발 물러서기가 아닌 오히려 그림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포토리얼리즘 회화의 숙명과도 같은 사진과 회화의 관계성 규명을 그들의 반목에서 찾는 것이 아닌 화해와 융합 안에서 찾고자 한 그의 작품은 진정한 리얼리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의 단상을 드러냅니다.

*계조 (gradation) :사진이나 이미지에서 밝은 부분부터 어두운 부분까지 변화해 가는 농도의 단계

Q. 회화의 기법으로 포토리얼리즘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어릴 적 그림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당시 미술계의 주류였던 추상화보다 사실주의 회화를 먼저 접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자연스럽게 사실주의 회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주의 회화에서 사진은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다보니, 사실주의 회화에 대한 연구가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후, 이것이 제 그림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회화와 사진, 두 매체간의 관계성에 대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예술적 실험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이 포토리얼리즘 회화를 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의 사실주의는 그 힘을 잃게 되었고, 생존할 방법을 사진과의 차별성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사진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회화 본연의 특성을 찾고자 한 오랜 실험은 결국에는 사진과의 화해와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포토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림과 사진, 두 매체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림과 사진은 서로 닮은 점이 없는 듯하지만 그림과 사진 모두 사실주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회화는 사실주의적 재현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의 사실주의는 그 힘을 잃게 되었고, 생존할 방법을 사진과의 차별성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사진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회화 본연의 특성을 찾고자 한 오랜 실험은 결국에는 사진과의 화해와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포토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진과 그림이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두 매체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미디엄(medium)의 차이입니다. 그림은 물감을 사용하고 사진은 사진기란 도구가 필요하니 이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감을 통해 그림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회화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반면에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찍어야 한다는 점에서 회화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회화만이 품고 있는 아우라(Aura)입니다. 작가의 손을 거친 회화만의 수공예적 성격이 물감의 물성과 만나 만들어내는 회화의 아우라는 사진이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작품에 주로 서구적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작품의 이미지 선택은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어릴 적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다른 문화와 피부색을 지닌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의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였으니 아마도 서구적 이미지가 저에게는 익숙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저에게 한국인의 감수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한국적 정서와 색채를 담는 작업을 꾸준히 시도했습니다. 
작품의 이미지는 주로 대중잡지와 영상에서 선택합니다. 작품 <Gaze>는 아폴로 우주선의 발사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사용하였고 <Salad Days>는 하드코어 펑크록 음악에 심취해 있는 젊은이들을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Happy Painting>은 매스미디어가 담아낸 미인대회 참가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이미지들을 통해 지금은 사라진 시대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스미디어(mass media)에 의해 만들어진 그 시대의 영웅이야기를 회화로 구현한 것입니다. 우주선은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며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가 진리였던 시절을 대변합니다. 이 시절에 매스미디어는 과학과 록(Rock)스타, 미인을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디어가 생산한 그 시대의 영웅들은 아련한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그 실체는 사라져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듭니다. 제가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 각자가 지나온 시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Q. 대부분의 포토리얼리즘 회화는 다양한 색채를 통해 사실성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에 작가님의 작품은 핑크와 옥색 등의 단색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제 양극적인 성격을 그림을 통해 탈피하고자 시도했습니다. 어느 순간, 마초적이면서도 매우 섬세하고, 좋은 것과 싫은 것에 대한 구분이 정확한 저의 극단적인 성격이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초기에는 저의 성격처럼 화려하고 직설적이며 집착에 가까운 정밀한 테크닉을 요하는 작업을 주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화의 감성마저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후, 새로운 작업을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사실주의 회화를 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색채를 통한 변화를 시도했고 그것이 저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핑크와 옥색 같은 중간적인 성격의 색채로 발현된 것입니다.

Q. 새로운 생각,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오나요?

작가가 살아온 인생을 통해 형성된 세계관을 투영하는 것이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언어가 아닌 작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나아가 그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예술인 것입니다. 이렇듯 작품의 영감은 제 삶에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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